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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모험자본가 세대 정신을 대표하는 자를 한 명 뽑으라면,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의 카리스마를 가진 공동 창립자이자 사장인 스티븐 잡스를 뽑을 수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 Los Altos의 한 차고에서 시작한 사업을 10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일궈냈고, 창립 5년만에 포천 500대 기업에 올라서게 만들어냈다. 역사상 그 어느 기업보다도 빠른 속도다. 게다가 제일 당혹스러운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의 나이가 아직 29세밖에 안 됐다는 것이다.
애플은 미국의 가정과 사업장에 개인용 컴퓨터를 소개하였다. 1976년 애플 창립 이전의 컴퓨터에 대한 이미지는 SF 영화 속에 나오는 컴퓨터의 이미지였다. 거대한 기업과 정부 기관 안 쪽에 음산하게 숨어 있는 크고, 조용한 메인프레임이 삐빅거리고 반짝거리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그러나 트랜지스터,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이 등장하면서 컴퓨터 기술의 소형화가 가능해졌고, 개개인도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70년대 중반 컴퓨터 조립킷이 나타났고, 여러 취미가들의 흥미를 끌었는데, 가격은 375달러 정도였다.
샌프란시스코 남쪽에는 이미 전자회사와 젊은 신생기업들이 밀집되어 있는 마을에서, 장난과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두 명의 친구가 자기들의 소형 컴퓨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회사를 만들어낸다. 당시 21세였던 잡스는 기계공의 입양아였고, Reed College를 자퇴한 뒤 Atari에서 비디오 게임을 디자인했었다. 26세인 스티븐 워즈니악은 실리콘밸리라 알려진 곳에서 제일 큰 회사 중 하나인 휼렛팩커드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었다. 남는 시간에 이들은 임시변통의 컴퓨터(실제로 서킷 보드에 불과했다)를 하나 고안하였고, 엉뚱하게도 이 컴퓨터를 애플 I이라 불렀다. 별다른 기능은 없었으나 50명의 주문을 받았을 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성장 잠재성을 알아보았다.
워즈니악의 관심은 주로 기술 부문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일반인들을 위한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둘은 합세하여 키보드와 메모리(정보 저장을 위함이다)를 애플 I에 붙였고, 워즈니악은 디스크 드라이브(정보를 지속적으로 저장하고 읽어들이는 장치), 비디오 터미널을 추가시켰다. 잡스는 효율적인 전력장치와 우아한 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를 고용하였고, 드디어 애플 II가 태어났다. 그와 함께 개인용 컴퓨터 사업도 탄생하였다.
애플의 성장세는 정말 놀랍다. 애플이 잡스의 차고(실리콘 밸리 버전의 링컨 오두막집이랄 수 있다)에서 첫 해에 2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이후, 1984년 14억 달러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창립자들은 백만장자인 동시에 국민 영웅이 되었다. 대학으로 돌아가서 음악 축제를 후원하기 위해 1979년에 사실상 애플에서 은퇴했던 워즈니악은 상대적으로 애플 II 이후 기여한 것이 거의 없었으며, 애플을 계속 운영하여 미국 내 가정과 학교 컴퓨터의 70%에 애플 마크를 붙이고 경영권을 지켜내었으며, 400억 달러 규모의 초거대 기업 IBM을 개인용 컴퓨터 사업으로 끌어들이게 만든 장본인은 잡스였다.
포브스 지에서 미국 부자 순위에 들어가는 인물들 중 제일 젊은이는 추정 재산 4억 5천만 달러(대부분은 애플 주식이다)인 잡스다. (이 말도 해야겠다. 포브스지의 100대 부자들 중에, 자기 스스로 재산을 번 인물은 단 7명 뿐이었으며, 잡스도 이 중 하나에 들어간다.) 1983년의 불경기때문에 애플 주가가 하락하여, 최근 그의 재산은 장부상 거의 절반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그의 총재산가치는 현재 2억 달러 정도이다.
하지만 잡스 얘기를 들어보면 돈 얘기는 이야기의 절반도 못 된다. 특히나 그는 돈을 많이 쓰지 않는다. (친구들과 거의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는 개인용 컴퓨터, 특히 애플이 만드는 개인용 컴퓨터를 홍보하는 임무만 수행중이다. 그는 자기 물건 팔 시점을 놓치지 않는 상인이기도 하다.그는 컴퓨터가 나중에는 전화기, 혹은 내연기관처럼 혁명적이면서, 주방기기만큼이나 흔해지리라 묘사한다. 사실만 보더라도 애플 컴퓨터는 2백만 대 이상 팔렸다. 게다가 전국 교실이나 거실, 농장, 미사일 추적 센터, 사무실에서 쓰이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도 1만 6천여 종이 넘는다.
컴퓨터용 대중 시장을 만들면서 애플은 경쟁 환경 또한 조성하였다. 애플이 1977년부터 1982년 사이에 지배한 시장에서 경쟁을 하기 시작한 것인데, 아직까지는 IBM PC만큼 성공한 제품이 없다. IBM PC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28%의 점유율을 재빠르게 차지하여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애플은 시장점유율이 줄면서 리사와 애플 III를 선보였고 열광적인 반응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1983년 중반, 분석가들은 애플이 생존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크게 우려하기 시작하였다.
애플 내부의 권력투쟁도 있다. 잡스는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를 만드는 부를 통솔하는데, 잡스는 이 새로운 컴퓨터가 애플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희망이라고 본다. 이 새로운 컴퓨터가 실패한다면? 잡스의 말이다. "IBM만 남게 될 겁니다. 그리고는 개인용 컴퓨터 산업을 파괴시키겠죠." 그리고 3년 후, 매킨토시가 2천만 달러 짜리 광고 캠페인과 함께 등장하였다. "나머지 우리들"을 위한 컴퓨터로 말이다. 매킨토시는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로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종이같은 하얀 화면에, 작은 그림으로 프로그램이 나타나 있고, "마우스(버튼이 있는 자그마한 롤링박스)"를 통해 화면상의 그림을 선택한다. 실로 매킨토시는 제일 무섭지 않은 컴퓨터이다. 장난감으로 사기에 너무 비싸며, 본격적인 사무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도 받고 있으나, 애플은 한 달 4만 대의 매킨토시를 제조해왔고, 올해 두 배로 늘릴 예정이다.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잡스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든 선구자, 혹은 마케팅 기술만 요란하여 성공을 거둔 기회주의자로 나뉜다.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신고 60년대의 이상주의와 80년대의 사무실을 결합했다 자랑스러워 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잡스는 사랑받는 존재인 동시에, 공포의 존재이기도 하다. 한 엔지니어의 말이다. "제가 하루 20시간 일하는 이유요? 잡스입니다." The Little Kingdom의 저자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tz)는 잡스의 변덕(하루는 칭찬하고, 다른 하루는 비난)이 매킨토시 팀을 쪼갤 뻔 했었다고 전한다. 잡스는 또한 펩시콜라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에게 다가가, 이런 제안을 하면서 애플을 맡아달라 요청하기도 하였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 여기서 애들한테 팔아먹을 설탕물이나 파시겠소?" 스컬리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컴퓨터 혁명의 젊은(잡스는 다음달 서른 살이 된다) 아버지로서, 그의 삶과 기술을 돌아보기 위해 본지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셰프(David Sheff)를 실리콘 밸리로 보냈다. 그의 기사이다.
"필자는 항상 옷을 과장되게 입는다. 그런데 애플이 참 캐쥬얼하게 입는다는 말을 들었다. 10억 달러 규모의 기업 우두머리를 인터뷰하기에 처음에는 넥타이를 맸다.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처음 잡스를 만날 때, 그는 플란넬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별로 필자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하지만 애플의 새 사장, 존 스컬리를 만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애플 사무실은 보통의 사무실과는 상당히 다르다. 비디오 게임이 도처에 많고, 탁구 테이블이 놓여 있으며, 스피커는 The Rolling Stones에서부터 Windham Hill 재즈까지 음악이 흘러 나온다. 회의실은 다빈치와 피카소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간식실에는 냉장고가 있는데, 여기에 신선한 당근과 사과, 오렌지 주스가 들어 있다. (맥 팀은 한 해에 신선한 주스로만 10만 달러를 지출한다.)"
"잡스와 길게 얘기를 나눈 것은 일과 함께, Aspen과 Sonoma의 헬스 스파에서 보낸 휴가(그 해에 딱 두 번이었다)였다. 애플 월드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막을 방도는 없었다. 그는 IBM과의 전쟁에 대해 근엄하게 말하되, '단정하죠!'나 '미칠정도로 훌륭합니다!'와 같은 열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뉴욕시 유명인사들이 모인 한 아이의 생일파티에서 잡스를 만났을 때 인터뷰는 끝났다. 저녁이 되자 잡스는 9회 생일을 맞은 그 아이에게 캘리포니아 선물을 하나 주었다. 매킨토시 컴퓨터였다. 잡스는 그 아이에게 매킨토시의 그래픽 프로그램 안에서 어떻게 스케치를 하는지 보여주었다. 그러자 두 명의 남자가 잡스의 어깨너머로 그 광경을 쳐다 보았다. 한 남자가 흠, 하고 말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었다. '이게 뭐지? 키스! 이거 좀 봐. 정말 놀라워!' 옆의 남자가는 그라피티 예술가인 키스 해링(Keith Harring)이었다. 워홀과 해링은 맥을 쳐다 보았다. 워홀은 이내, 앉아서 마우스를 만졌다. 그의 외침이 들렸다. '맙소사! 내가 원을 그렸어!'"
"하지만 파티 이후가 더 인상적이었다. 손님들이 나간 이후에도 잡스는 아이와 함께 있었다. 맥의 요점을 알려주면서 말이다. 나중에 잡스에게 물어보았다. 두 명의 유명 예술가와 있을 때보다도 소년과 함께 있을 때가 더 행복해 보였다고 말이다. 그가 답변을 미리 준비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앉아서 이게 뭐냐고 물어 봅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이렇게 물어 봤죠. '이걸로 제가 뭘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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